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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6 [20:16]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도시들 : ③ 베네치아 침몰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상승으로 금세기말쯤 도시 대부분 침몰할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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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로마의 피난민들은 늪지대의 물컹한 토층 아래 단단한 층까지 닿는 기다란 나무 말뚝을 수직으로 섬 전체에 빼곡히 박으면서 건물을 짓기 시작해 차츰 ‘해상도시’를 만들어나갔다. 나무 말뚝이 펄에 박히면 공기가 차단돼 썩지 않는 성질을 이용했다. 해상도시가 차츰 번성하여 1500년이 넘는 역사를 쌓으면서 한때는 이탈리아반도와 발칸반도 사이 아드리아해의 패권을 장악하였고, 나아가서는 유럽대륙과 아시아-아프리카대륙 사이 지중해의 패권을 움켜쥐기도 하였다.
이탈리아반도 북동부 알프스산맥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은 베네치아섬 일대 아드리아해 바다로 흘러들면서 모래와 자갈, 진흙을 베네치아섬 밖의 얕은 바다에 퇴적시켜 길쭉길쭉한 방조제 섬을 만들면서 베네치아섬 주변 바다를 석호(潟湖)로 만들었다. 바다도 아니고 호수도 아닌 이 석호에서 탄생한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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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다. 애초의 ‘피난지’가 번성하여 어느덧 주변을 장악하여 지배한 ‘왕국’으로까지 번성하기까지에는 단연코 ‘물의 힘’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바닷길을 이용한 상업 활동이 왕국 건설의 토대가 되었다. 한마디로 베네치아는 물로써 흥한 왕국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는 법이어서 베네치아는 지금부터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도시 존재의 원천이었던 바닷물에 잠겨 영영 사라질지도 모를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맞닥뜨렸다. 매우 비관적 시각의 연구자들은 21세기 말이면 베네치아 섬의 90% 이상이 물속에 잠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 ‘베네치아 침몰’의 결정적 원인은 바로 ‘해수면상승’이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화에 따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었고, 지구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변화는 남북극과 고산지대 등 지구 극지의 얼음을 녹여 해수면을 걷잡을 수 없이 상승시킴으로써 베네치아 같은 저지대 도시들을 집어삼킨다는 것이다. 특히 베네치아는 애초에 물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바닷물 만조 때의 해발고도가 높아 봐야 1m 이내의 저지대라는 게 결정적 취약점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1월에는 베네치아섬 지역인 구시가지의 50~60%가 침수되는 대홍수가 발생하였다. 이탈리아반도 동북부 내륙에 자리 잡은 신시가지와 달리 섬으로 이루어진 베네치아 구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 것은 그해 11월에만도 세 번째였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베네치아에서 1872년 조수 수위 측정이 시작된 이래 150년 가까이에 최악의 홍수 상황”이라고 전했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산마르코 대성당도 이때 침수됐다. 9세기에 세워진 이후 1200여 년간 단 5번만 침수된 산마르코대성당에도 바닷물이 들어차 1m 이상 침수됐다. 산마르코대성당은 2018년 10월에 이어 2년 연속 침수된 것이다.
당시 베네치아 지역은 아프리카 쪽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 바닷물 수위가 높아진데다 가을 우기 집중호우로 이탈리아반도 북부의 강물이 베네치아 석호로 거침없이 흘러들어 한때 바닷물 수위가 기준선보다 187㎝나 더 높아져 구시가지에 대홍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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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루이지 브루냐로 베네치아 시장은 베네치아 전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하면서 “이번 홍수는 이론의 여지 없이 기후변화의 결과”라고 천명했다. 또 독일 킬대학과 영국 서식스대학의 지리학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기후변화에 따른 잦은 홍수와 해
안선 침식으로 지중해 지역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면서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베네치아를 꼽은 바 있다. 이 연구팀은 21세기 말이 되면 최대 2.5m의 해수면 상승으로 베네치아 육상 면적의 97%가 잠길 것으로 전망했다.
베네치아의 침수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그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자 베네치아 당국은 지난 2002년 해수면이 높아질 조짐이 있을 때는 인공장벽으로 바닷물을 막겠다는 ‘모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석호의 모래 및 진흙· 자갈 퇴적층 방벽 사이에 있는 수로 3곳에 조수의 흐름을 막는 10층 건물 높이의 가변식 인공장벽을 세우는 계획이었다. 인공장벽이 평상시에는 해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높은 조수가 밀려오면 이동식 갑문에 공기를 채워 해수면 위까지 떠오르게 해서 수문을 닫는 효과를 낸다는 방식이었다.
2003년부터 설치 작업에 들어간 이 인공장벽은 2021년까지 60억 유로(한화 7조 원)의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완공되었지만 끝내는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초라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말았다. 물은 어김없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또 틈새를 찾아 이리 흐르고, 저리 흐르기 때문에 때에 따라 해수면이 높아진 바닷물은 인공장벽의 빈틈을 찾아 외해(外海)에서 석호로 물밀듯이 밀려들어 베네치아 섬에 여전히 홍수를 일으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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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베네치아가 해수면상승의 결과로 ‘침몰’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유일한 교통로인 내부 운하, 즉 물길이 가끔 말라 들면서 곤돌라와 수상버스 등 수상운송수단이 마비되곤 하여 베네치아는 이래저래 물로 인하여 극심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평소 같으면 썰물 때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강인 포강 등 알프스 산맥 이남 이탈리아 북부의 풍부한 강물이 베네치아섬을 둘러싸고 있는 석호(潟湖)로 흘러들어 곤돌라가 다니는 뱃길인 골목 운하에 물을 대어주는데 극심한 가뭄으로 이탈리아 북부의 강물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올 2~3월 한때 일부 지역에서는 곤돌라 물길이 말라버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골목 운하마다 곤돌라들이 시커먼 갯벌에 배를 깔고 멈춰있는 진풍경이 여기저기 펼쳐졌다. 물론 곤돌라가 멈춰 서면 베네치아의 교통은 그대로 마비된다. 베네치아는 육상 차량 교통수단이 전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