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2024.10.16 [20:16]
기후위기, 한국과 세계를 동시에 뒤흔드는 재난의 시대기록적 산불·폭우·해충의 역습, 기후위기가 불러온 일상 속 파괴
|
![]() ▲ 장마 속 폭우로 인해 많은 피해를 일으킨 ‘대기의 강’이 우리나라 상공에 위치해 있던 상황을 레이더로 포착한 모습. 서남쪽 서해상에서 동북쪽 동해상으로 흐르면서 우리나라를 관통해 청주 오송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경북 예천 산사태를 일으켰다. <기상청 자료> |
기후위기의 현실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이미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는 삶의 모든 영역을 흔드는 실체적 재난으로 다가왔다.
2025년 3월 말 한국은 사상 최악의 산불을 겪으며 기후재난의 새로운 장을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수천 건의 화재는 산림을 집어삼키며 최소 32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수만 명의 이재민을 남겼다. 불길은 순식간에 마을을 삼켰고, 수십만 헥타르의 산림은 잿더미로 변했다.
국제 연구진은 이번 산불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 가능성이 두 배로 높아지고 강도 역시 15%나 더 강해진 결과임을 경고했다. 불길의 원인 뒤에는 더 건조해진 겨울, 더 뜨거워진 봄,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바람이 있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산불의 양상은 더 이상 국지적 재난이 아닌, 기후위기의 전형적 징후였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기후재난은 멈추지 않았다. 7월 한국 일부 지역은 기록적인 폭우에 직격탄을 맞았다.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를 넘는 비는 산사태와 도로 붕괴를 동반하며 사람들을 집과 길 위에서 덮쳤다.
강원과 경기 지역에서는 산비탈이 무너져내리며 마을 전체가 고립됐고, 물살은 가정집과 차량을 삼켰다. 이번 폭우로만 최소 17명이 목숨을 잃었고 11명이 실종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극단적 강수 현상이 기후위기가 촉발한 새로운 재난 양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여름철 집중호우는 이제 전례 없는 속도로 빈번해지고 있으며, 이는 해수면 온난화와 대기 불안정이 결합된 결과다. 국민들은 더 이상 장마철 폭우를 ‘일상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 ▲ 러브버그 (사진=서울연구원) |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을 괴롭힌 새로운 불청객은 다름 아닌 곤충 떼였다. ‘러브버그’라 불리는 짝짓기 곤충은 예년보다 훨씬 큰 규모로 번식하며 거리와 가정을 습격했다.
불과 2023년 4천여 건에 불과했던 민원은 2024년 9천 건을 넘어섰고, 2025년 들어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리의 불빛과 차량, 심지어 집 내부까지 파고드는 곤충 떼에 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기후온난화로 인한 평균기온 상승과 생태계 변화가 곤충의 번식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고 진단한다.
이는 기후위기가 단순히 폭우·산불 같은 거대한 재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까지 위협하는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잇따른 기후재난 앞에서 제도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5월 환경부를 기후환경부로 확대 개편해 기후변화 대응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통합 기후재난 감시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2035년을 목표로 한 새로운 감축 목표 수립, 배출권 거래제의 유상할당 비율 상향, 기후공론장 확대 등 다각적인 정책이 발표됐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기후정책 평가는 여전히 낮다. 기후변화성과지수(CCPI) 기준으로 한국은 63위라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사용, 에너지 효율, 기후정책 등 전 부문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후 정책의 선언은 있었지만 실질적 이행과 사회적 전환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학계와 국제 연구기관들은 한국이 더욱 높은 목표와 실질적 감축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과 한국 연구진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이 ‘고위험 감축 시나리오’를 채택할 경우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61%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분석은 한국이 탄소중립 경로를 채택할 경우 향후 약 3,142억 달러, 한화 약 424조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이 단지 환경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곧 경제적 생존과 국가 경쟁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책 속도와 사회적 합의 구조로는 2030년까지 탄소 예산의 90%를 소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 지구에 위협이 되는 기후위기, 핵전쟁,바이러스, AI등 이미지 |
세계적으로도 기후위기의 징후는 심화되고 있다. IPCC 6차 평가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이 2050년까지 2.8도 상승할 경우 최대 33억 명의 인류가 홍수와 식량·수자원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23년 기준 151개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했고, COP28에서는 130개국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를 2배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실제 이행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선진국의 이행 부족, 개발도상국의 자금과 기술 부족, 그리고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세계는 위기를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늦장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 역시 지리적·경제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더 큰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반도 국가 특성상 해수면 상승과 해양 온난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고, 대도시 집중 구조는 폭염과 열섬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산림이 많은 국토는 산불의 위험에 취약하며, 여름철 폭우는 산업과 농업 기반을 동시에 붕괴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러한 기후위기 속도가 정책과 사회적 대응 속도를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는 이제 환경부나 일부 전문가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계, 금융권, 지방정부, 시민사회 모두가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드러났다.
특히 지역 단위의 적응 전략과 분권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일한 중앙정부 정책만으로는 전국 곳곳의 기후재난에 맞설 수 없다. 산불 취약지대, 폭우 상습 지역, 도시 열섬 지역 등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 동시에, 국제사회와의 협력, 특히 탄소중립 기술 교류,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산, 기후금융 메커니즘 참여가 불가피하다.
![]() ▲ 기후변화로 인해 기후위기 캘리포니아 산불 |
기후위기는 곧 생존의 문제다. 한국은 기록적 산불, 폭우, 곤충 떼의 역습까지 이미 그 파괴력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대응은 아직 미약하다. 국제사회에서 뒤처진 평가는 경고음이자 선택의 기로를 알리는 신호다. 기후위기를 단지 ‘환경 정책’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미래 세대의 생존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 20년 뒤 한국 사회의 생존 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은 정치적 논쟁의 여지가 아닌, 인류 보편적 책무이자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불가피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