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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의 성공과 몰락... 정태수 회장의 비화

부동산에서 철강으로: 한보그룹의 급성장과 정치권 유착

과도한 차입과 부실 경영: 한보철강의 몰락과 IMF 위기

해외로 도피한 정태수: 한 기업가의 성공과 파국의 두 얼굴

유경남 기자 | 기사입력 2024/10/11 [17:39]

한보그룹의 성공과 몰락... 정태수 회장의 비화

부동산에서 철강으로: 한보그룹의 급성장과 정치권 유착

과도한 차입과 부실 경영: 한보철강의 몰락과 IMF 위기

해외로 도피한 정태수: 한 기업가의 성공과 파국의 두 얼굴

유경남 기자 | 입력 : 2024/10/11 [17:39]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1950년대에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폐광산과 철강재를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에 진출해 1960년대 대치동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며 한보그룹을 부동산 업계에서 성공시켰다.

 

당시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성장 중이었고, 정태수는 이를 활용해 큰 수익을 올리며 재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는 한보그룹의 초석이 되었고, 정태수는 이후 더 큰 도약을 준비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보그룹은 철강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으며, 정태수는 이를 발판 삼아 1970년대 중반 한보철강을 설립했다.

 

특히 1980년대 중반에는 당진에 대규모 제철소를 건설하며 한보철강을 한국 철강 산업의 주요 주자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확장은 차입금에 크게 의존한 결과로, 그룹의 재무 구조는 점차 불안정해졌다. 철강 산업에서의 성공은 한보그룹의 몸집을 키웠으나, 재무적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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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한보그룹은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더욱 급격한 성장을 꾀했다. 정태수는 당시 정치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금융기관에서 무려 5조 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받아 철강 및 부동산 사업을 확장했다. (사진=소비더머니 유투브 캡쳐)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한보그룹은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더욱 급격한 성장을 꾀했다. 정태수는 당시 정치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금융기관에서 무려 5조 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받아 철강 및 부동산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철강 수요의 불안정성과 부동산 시장의 변화는 한보그룹의 재정 상태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과도한 차입금은 결국 그룹의 경영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보그룹의 경영 위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화되었다.

 

결국 1997년 초, 한보철강은 부도를 맞게 되었다.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한보그룹의 부실 경영과 과도한 차입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한보그룹의 부도는 한국 경제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대규모 일자리 상실과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대규모 청문회가 열리고, 금융계와 정계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불거지며 한보그룹의 부실 대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한보그룹의 몰락 이후, 정태수는 재판 도중 해외로 도피하며 행방을 감추었다. 그는 일본, 중앙아시아, 남미 등지로 도피하며 한국 경제사에서 사라진 인물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 한국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한보그룹의 사례는 정치적 특혜와 무리한 차입에 의존한 기업이 어떻게 파국을 맞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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