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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나라의 높은 임금, 과연 정당한가?

생산성의 허상...스웨덴 버스 기사와 인도 버스 기사의 임금 격차

이민 제한 정책과 보호주의가 만든 비공정한 시장

단??

하상기 기자 | 기사입력 2024/12/04 [10:18]

잘사는 나라의 높은 임금, 과연 정당한가?

생산성의 허상...스웨덴 버스 기사와 인도 버스 기사의 임금 격차

이민 제한 정책과 보호주의가 만든 비공정한 시장

단??

하상기 기자 | 입력 : 2024/12/04 [10:18]

잘사는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비해 과도한 임금을 받는다는 주장은 오랜 논쟁거리다. 자유 시장 경제의 논리에 따르면 임금은 생산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임금 격차는 생산성의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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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버스 내부는 승객의 편의와 접근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버스는 저상버스로 제작되어 승하차가 용이하며,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스웨덴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운영되고 있어, 승객들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 스벤은 시간당 870루피를 받는 반면, 인도 뉴델리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 람은 시간당 18루피를 받는다. 이는 약 50배의 차이다. 스벤이 람보다 50배 높은 생산성을 가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임금 차이를 생산성 격차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버스 기사라는 직업에서 50배의 생산성 차이를 낼 수 있을까? 스벤이 한 시간 동안 운전하는 동안 람은 소, 인력거, 음주 운전자, 자전거 등을 피해가며 아찔한 곡예를 펼친다. 생산성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더 복잡한 환경에서 일하는 람이 높은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왜 스벤이 더 많은 돈을 받을까?

 

스벤의 고등 교육 이수 여부도 임금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버스 운전에 필요한 기술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무관하다. 따라서 스벤이 7년 더 공부했다고 해서 그의 운전 실력이 향상됐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스벤의 높은 임금은 스웨덴 정부의 이민 제한 정책 덕분이다.

 

이민 제한 정책은 외국 노동자들이 스웨덴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 스웨덴 노동자들이 경쟁 없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한 버스 기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 은행가들도 인도, 중국, 가나 출신의 노동자들과 직접 경쟁하지 않기에 높은 임금을 유지할 수 있다.

 

스웨덴을 포함한 잘사는 나라의 노동 시장은 이민 통제 정책을 통해 보호되고 있다. 이는 자유 시장 논리와 모순된다.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학자들은 최저 임금제나 노동 시장 규제를 비판하면서도, 이민 제한 정책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장의 범위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민 제한 정책을 포함하지 않은 노동 시장 논의는 일관성이 결여된 주장에 불과하다.

 

이민 제한 정책은 잘사는 나라의 국민들이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는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에게 불공평한 조건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잘사는 나라들이 선호하는 고학력 이민자와 기술 인력은 개발도상국의 두뇌 유출 문제를 심화시킨다. 개발도상국의 고급 인력이 부자 나라로 이동함에 따라, 자국의 경제 발전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구나 많은 부자 나라들은 투자금을 조건으로 국적을 판매하는 정책을 운영한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자본 유출을 가속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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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의 본사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르네상스 센터에 있습니다. 위키백과 이곳은 GM의 글로벌 운영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부서와 시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르네상스 센터는 디트로이트 강변에 위치한 복합 건물로, GM의 본사뿐만 아니라 호텔, 상업 시설, 레스토랑 등이 함께 있어 디트로이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금 격차의 문제는 잘사는 나라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주주 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노동자를 희생시키며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GM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이유로 다운사이징을 반복하며 투자를 회피했다. 그 결과 GM은 2009년 파산했다.

 

이는 단기 전략이 기업의 장기 생존 가능성을 얼마나 해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독일과 일본처럼 장기적 관점을 중시하는 기업들은 더 높은 생존 가능성을 보인다. 독일에서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의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며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우호적인 기업 간 상호 출자를 통해 부동 주주들의 영향을 최소화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단기 이익을 위한 노동자 해고나 투자 기피가 어려워진다.

 

결국, 잘사는 나라에서 임금 격차는 생산성이나 능력보다는 정치적 결정과 제도적 보호에 의한 결과다. 부자 나라들이 개발도상국 노동자들과의 경쟁을 회피하는 방식은 자유 시장 경제의 이상과 거리가 멀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이민 제한 정책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 역시 정치적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민 정책의 개혁은 단순히 노동 시장의 자유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각 국가는 이민자 수용 능력을 감안해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행 이민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여지가 많다.

 

특히, 자본을 기반으로 국적을 판매하거나, 고급 인력만을 선호하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의 두뇌 유출을 막기 위해 더 책임감 있는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동시에 개발도상국도 자국의 노동자와 자본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잘사는 나라의 높은 임금은 단순히 생산성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정치적 선택과 경제적 보호주의의 산물이다. 자유 시장이라는 이상적인 논리는 현실에서 다양한 제약과 모순 속에 작동한다. 이런 점을 인식하지 않는 한, 임금 격차와 관련된 논의는 진정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중에서 ] 


원본 기사 보기:내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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