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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영국과 유럽이 무너지는 이유 – ‘제국의 몰락’에서 ‘시스템의 한계’로①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잃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지다

유럽 제조업의 추락,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위기

고령화·복지·정치 분열이 만든 내부 붕괴의 시간표

에너지·기후·전환비용이 만든 유럽의 ‘불황형 그린딜’

쇠퇴의 대서사, 그러나 부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5/10/17 [08:47]

[기획] 영국과 유럽이 무너지는 이유 – ‘제국의 몰락’에서 ‘시스템의 한계’로①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잃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지다

유럽 제조업의 추락,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위기

고령화·복지·정치 분열이 만든 내부 붕괴의 시간표

에너지·기후·전환비용이 만든 유럽의 ‘불황형 그린딜’

쇠퇴의 대서사, 그러나 부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5/10/17 [08:47]

영국과 유럽이 지금 ‘망해가고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자극적 수사가 아니라, 구조적 붕괴의 경고음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가까이 세계의 중심에 있었던 유럽은 더 이상 경제적 활력도, 정치적 통합의 에너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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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은 풍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독특한 건축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로는 런던의 빅벤, 타워 브리지,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이 있으며, 이러한 장소들은 영국의 전통과 현대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런 영국이 무너지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외교와 무역의 중심축을 잃었고, 유럽 대륙은 러시아의 에너지 전쟁과 전환비용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성장률은 정체되고, 청년들은 미래를 믿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서구 문명의 중심부였던 유럽은 ‘기후·고령화·복지·산업 쇠퇴’라는 네 가지 거대한 벽 앞에서 멈춰서 있다.

 

영국의 추락은 브렉시트와 함께 시작됐다. 2020년,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은 ‘국가의 주권을 되찾겠다’며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지만, 현실은 경제적 고립이었다.

 

EU 단일시장에서 빠져나온 이후 수출기업들은 새로운 관세와 복잡한 행정 절차에 직면했다.

 

런던의 금융 허브는 점차 프랑크푸르트와 파리로 기능이 이동했고,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 경제의 대표적 약점인 ‘생산성 퍼즐’은 브렉시트 이후 더욱 심화됐다.

 

15년 넘게 노동 생산성은 정체됐고, 민간 투자율은 주요 선진국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브렉시트가 의도한 ‘글로벌 브리튼’은 실현되지 않았고, 남은 것은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생활수준의 하락이었다.

 

임금 상승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했고,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은 1980년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거 대영제국의 상징이던 ‘안정된 중산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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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중앙의 긴축정책은 남유럽의 성장 여력을 갉아먹었고, 복지지출을 줄이려는 정치적 압박은 사회 불안을 키웠다.

 

유럽의 위기는 영국보다 복잡하고 더 깊다.

 

2010년대 초 그리스와 남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의 그림자는 아직도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유로존은 단일 통화체제를 유지하지만, 재정정책은 각국이 따로 움직인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중앙의 긴축정책은 남유럽의 성장 여력을 갉아먹었고, 복지지출을 줄이려는 정치적 압박은 사회 불안을 키웠다.

 

유럽의 제조업 중심국이던 독일마저도 최근 들어 산업 경쟁력을 잃고 있다.

 

‘유럽의 엔진’이라 불렸던 독일 제조업은 에너지 비용 폭등과 친환경 전환비용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구조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완전히 흔들렸고, 산업용 전력비가 두 배 이상 치솟았다.

 

화학, 철강, 자동차 산업이 줄줄이 해외로 이전을 검토하며 ‘탈독일화’ 현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그린딜’은 친환경 산업 육성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비용 상승과 규제 피로감만 키우고 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막대한 투자비용은 결국 세금으로 환수되고, 이는 중산층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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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유럽연합)    프랑스와 독일의 대도시에서는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 문제가 폭발하고 있고, 이는 극우정당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의 정치 지형이 점차 양극단으로 쏠리면서, 합리적 중도정치는 설 자리를 잃었다.

 

유럽의 경제 둔화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라 ‘구조적 노화’의 결과다.

 

가장 심각한 요인은 인구구조의 변화다. 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대륙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노동가능 인구를 급격히 줄였고, 복지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은퇴자들의 연금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세금이 인상되면서, 청년층은 상대적 불만을 키워간다.

 

이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이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이민 확대는 단기적으로 노동력 부족을 메우지만,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 갈등을 야기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대도시에서는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 문제가 폭발하고 있고, 이는 극우정당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의 정치 지형이 점차 양극단으로 쏠리면서, 합리적 중도정치는 설 자리를 잃었다.

 

포퓰리즘 정당은 ‘유럽연합 탈퇴’나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단기적 분노를 정치 에너지로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의 정치 시스템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장기적인 정책 일관성은 사라졌다.

 

이 같은 내부 균열에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가 불을 붙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유럽 전체 전력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제재 이후 유럽은 갑작스러운 공급 위축을 맞았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으로 대체 에너지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프랑스는 원전 유지 비용과 재건축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각국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서둘렀지만, 풍력과 태양광은 불안정한 공급 구조를 갖고 있어 산업현장에는 전력 불안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낳았다.

 

결국 ‘친환경 전환’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유럽의 기업들은 아시아와 북미로 공장을 이전하며 ‘탈유럽’ 전략을 택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주장하는 ‘탄소국경조정제(CBAM)’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방어막이지만, 글로벌 공급망에서는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린딜이 ‘불황형 성장’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과 유럽의 경제 쇠퇴는 단지 수치상의 문제를 넘어 문명적 자신감의 붕괴를 동반한다. 과거 유럽은 세계의 법과 철학, 민주주의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은 혁신의 속도에서도, 인구의 활력에서도, 자본의 흡인력에서도 뒤처지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AI, 반도체, 금융 패권을 유지하며 신기술 투자에서 앞서가고, 중국은 내수와 제조력으로 세계 공급망의 주도권을 쥐었다.

 

반면 유럽은 기술 투자보다 규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확장도 더디며, 글로벌 시장에서 ‘유럽 브랜드’는 점점 힘을 잃는다. 유럽의 젊은 세대가 ‘기회’를 찾아 미국이나 아시아로 이주하는 현상은 단순한 인재 유출이 아니라 문명적 탈피 현상이다.

 

‘기회의 대륙’이었던 유럽이 ‘정체된 낙원’으로 변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몰락은 아직 확정된 미래는 아니다. 유럽은 여전히 과학기술, 인권, 복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반을 갖고 있다.

 

문제는 구조 개혁과 혁신을 향한 결단의 부재다.

 

브렉시트로 갈라진 영국은 새로운 무역 파트너십과 기술 혁신을 통해 ‘글로벌 금융 허브’로의 재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재정통합과 노동시장 개혁, 에너지 자립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통합과 사회적 신뢰 회복이 필수적이다. 유럽은 지금처럼 ‘안전한 몰락’을 택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부활’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쇠퇴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문명의 전환기적 신호다.

 

19세기 대영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처럼, 기술과 인구, 자본이 한곳에 집중되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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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맨 제도: 카리브해에 위치한 영국의 해외 영토로, 법인세와 소득세가 없어 다국적 기업과 금융 기관들이 선호하는 지역.

 

세계는 다극화되고, 성장의 중심은 아시아와 신흥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문명의 중심이 이동한다고 해서 유럽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은 여전히 인류의 이성적 전통과 법치, 인권의 정신을 지탱하는 근본축이다.

 

다만 그 위대한 문명이 다시금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득권의 관성’을 깨야 한다. 복지와 규제, 관료주의와 정치적 타협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국과 유럽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아니면 스스로 만든 체제의 무게에 짓눌려 사라질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쇠퇴의 길을 걷는 서구는 이제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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