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는 지금 열의 대륙으로 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 오리건에 이르기까지 여름은 더 길고 건조하며 밤의 온도마저 내려가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서부 지역의 가뭄은 단순히 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대기가 뜨거워지며 수분을 더 빨리 증발시켜 땅을 바싹 말려버리는 ‘대기건조 수요(Evaporative Demand)’가 주범으로 떠올랐다.
2020~22년 가뭄 기간 동안 이 증발수요가 가뭄의 60% 이상을 차지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즉, 서부의 하늘은 더 이상 비의 부족이 아니라 열의 탐욕으로 메마르고 있는 셈이다.
비가 와도 안심할 수 없다 — 하이드로클라이밋 휩래시의 덫
기후학자들은 미국 서부를 두고 젖었다가 말라붙는 땅이라 부른다.
한 해에는 극심한 가뭄이, 다음 해에는 폭우가 몰아친다.
이런 극단적 기후 변동성, 즉 ‘하이드로클라이밋 휩래시(Hydro-climate Whiplash)’는 이제 새로운 일상이 됐다.
‘대기강우(Atmospheric Rivers)’라 불리는 폭풍이 몰아치면 강이 넘치고 산사태가 일어나지만 불과 몇 달 뒤 같은 지역이 황토 먼지로 뒤덮인다.
이처럼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없는 양극단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서부의 도시와 농업은 동시에 홍수와 가뭄의 위협을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극단적 변화가 산불 위험을 더 키운다는 점이다. 비가 많이 온 뒤 식생이 무성해지고, 다시 건조기가 닥치면 그 식생이 모두 불쏘시개로 변하기 때문이다.
불타는 하늘, 스스로 날씨를 만든다
서부의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기후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여름철마다 발생하는 거대 산불은 수천 제곱킬로미터의 숲을 태우며 연기와 열기를 하늘로 밀어 올린다.
이 연기가 대기 흐름을 바꾸고, 심지어 ‘파이로누스(Pyrocumulus)’라 불리는 거대한 화염구름을 만들어 자체 기류를 형성한다.
즉, 산불이 스스로 날씨를 만들어내는 ‘파이로-기상(Pyro-meteorology)’ 현상이 실제로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 예보모델은 오차가 커지고 예측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기후변화가 1990년대 이후 서부의 화재 배출량의 65% 이상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불은 이제 더 이상 비상사태가 아니라 기후시스템의 일상적 일부가 되었다.
예측의 패러다임, 평균에서 극단으로 기상예보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평균 기온이나 평균 강수량 중심의 예측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극한 현상을 예측하는 리스크 기반 예보로 전환되고 있다.
서부에서는 기온이나 강수량보다 ‘대기 수분압(VPD)’이 훨씬 중요한 예측지표로 쓰인다.
VPD는 공기가 얼마나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산불과 가뭄, 식생 건조도를 직접적으로 예측한다.
또한 예보의 시간 단위도 변했다. 단기 예보를 넘어 2~6주 단위의 중기 예측과 계절 예보로 확장되었다.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이 투입되며 기존 모델 대비 예측 정확도가 40~170% 향상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예측의 목적이 날씨를 맞추는 것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를 보는 눈, 인공지능과 위성의 결합
캘리포니아의 ‘Center for Western Weather and Water Extremes(CW3E)’는 200개의 앙상블 모델로 대기강우 경로를 추적하며 폭풍 경로와 강수량을 실시간으로 예측한다.
이 시스템은 고해상도 위성 데이터와 AI 학습 알고리즘을 결합해 기상 예보를 ‘가능성 지도(probabilistic map)’ 형태로 제공한다.
기상학자들은 이를 새로운 기후 예보의 언어라 부른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산악지형, 급격한 바람 변화, 토양수분·식생 데이터 부족 등은 여전히 오차를 만든다.
또한 예측이 아무리 정확해도 이를 정책과 현장 대응으로 연결하는 마지막 1마일이 약하면 정보는 힘을 잃는다.
기상학자 마이클 앤더슨은 “서부의 위기는 데이터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라며,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판단이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말했다.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
미국 서부는 이제 평균적 날씨가 존재하지 않는 땅이 되었다.
가뭄과 폭우, 화재와 홍수가 번갈아 등장하는 이 지역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이자 예측 과학의 실험실이다.
기상학자들은 “서부를 이해하는 것은 지구의 미래를 이해하는 일”이라 말한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전략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빠른 적응이다.
불안정한 대지 위에서, 미국 서부는 그 적응의 기술을 가장 먼저 배우고 있다.
사진 출처: NOAA, NASA Earth Observatory, Climate.gov, NPR, Drought.gov, Axios